자동차 없는 삶, 한국에서 가능한 도전인가?
한국은 자동차 중심 사회다. 고속도로, 대형 주차장, 드라이브 스루 시스템까지 자동차에 맞춰 도시가 설계돼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중교통 인프라 강국이기도 하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지하철, 광역버스, 마을버스, 공유 자전거, 택시까지 촘촘히 연결되어 있고, 교통카드 한 장이면 대부분의 도시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에서 개인 차량 없이도 일상을 무리 없이 보낼 수 있을까? 필자는 직접 자동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한 달간 ‘대중교통 + 공유 모빌리티 + 도보 기반 생활 실험’을 진행해보았다. 예상과 달리 이 실험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비용 절감, 건강 개선, 환경적 만족감까지 얻게 되는 경험으로 다가왔다. 이 글은 그 실험의 기록과 실제 노하우를 담은 리포트다.
출퇴근 루틴의 변화 – 시간은 늘었지만 스트레스는 줄었다
실험의 첫 번째 변수는 출퇴근이었다. 평소 자가용으로 25분 거리였던 사무실까지의 통근이, 지하철과 도보로는 약 40분이 소요되었다. 시간은 분명히 늘어났지만 전반적인 스트레스는 눈에 띄게 줄었다.
이전에는 주차 공간을 찾느라 아침마다 불안했고, 퇴근 후에는 교통체증으로 짜증이 났다. 반면 지하철을 이용하니 출발·도착 시간 예측이 정확하고, 그 안에서 책을 읽거나 뉴스레터를 보는 루틴이 생겼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은 배차 간격이 2~5분 이내로 짧고, 정시성도 높은 편이라 장기적으로는 시간 관리도 효율적이었다. 도보 거리가 늘면서 하루 8,000보 이상 걷게 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체중 감량과 수면의 질 개선으로 이어졌다. 출퇴근이 고통이 아닌 ‘회복의 시간’으로 바뀐 것이다.
장보기와 생활 이동의 재구성 – 불편함을 대체하는 전략
차가 없으면 가장 불편하다고 느끼는 부분 중 하나가 장보기다. 특히 물이나 쌀처럼 무거운 식료품은 자가용이 있을 때 편리한 대표적 예다. 하지만 이 역시 소형 장보기 + 온라인 배송 + 공유 물류 조합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했다.
예를 들어, 근처 재래시장에서 필요한 채소와 생필품은 장바구니 카트(접이식)로 끌고 이동했다. 10분 이내 거리라면 걷는 것이 오히려 주차보다 빠르고 자유로웠다. 쌀, 생수, 세제 등 부피가 큰 제품은 마켓컬리, SSG, 오아시스 등 새벽배송 서비스를 이용해 부담을 덜었다.
또한 무거운 물건을 살 때는 공유 물류 플랫폼(예: 카카오같이타요)를 통해 근처 거주자와 나누거나, 일회용 택배차량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렇듯 불편하다고 느껴지는 상황에도 이미 한국엔 다양한 대체 수단이 마련돼 있으며, 이를 적절히 조합하면 오히려 효율이 높아진다.
주말 외출과 여행 – 차 없이 떠나는 저탄소 라이프
주말이면 여행이나 외출을 계획하게 되는데, 이 부분이 개인 차량이 없을 때 가장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수도권에서는 SRT, KTX, 광역버스, 공공자전거만으로도 거의 모든 주요 관광지를 커버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까지는 청량리역에서 ITX를 타고 1시간 이내에 도착했고, 역에서 대여할 수 있는 공유 전기자전거(일레클, 따릉이)를 통해 나머지 이동도 문제없었다. 캠핑이 필요할 경우엔 ‘차박’이 아닌 기차+캠핑장 렌트 패키지, 혹은 카쉐어링(쏘카)을 주말에만 4~5시간 단기 렌트해 대체했다.
평소에는 주말 외식, 문화생활, 쇼핑도 전부 대중교통이나 도보 범위에서 소화 가능했고, 예상보다 차량 의존도가 훨씬 낮았다.
또한, 따릉이 정기권(월 5천 원대)을 이용하니 비용 부담 없이 도심 곳곳을 이동할 수 있었으며,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서울에서는 자전거가 차보다 빠른 구간도 존재했다.
자동차 없는 한 달이 남긴 것 – 자유, 비용 절감, 그리고 기후 행동
한 달간의 차량 없는 생활이 끝난 후 가장 인상 깊었던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가능한 삶’이라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불편함이 클 것이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시간, 돈, 건강, 정신적 여유 모든 면에서 더 나아졌다는 느낌이 강했다.
월 주유비 약 15만 원, 보험료 8만 원, 경정비 3만 원 등 매월 25~30만 원의 지출이 사라졌고, 주차 걱정도 없어졌다. 체중은 2kg 줄었고, 걸음 수 증가로 수면의 질도 좋아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탄소 배출량 감소에 대한 체감이었다. 차량 이용을 하루 0회로 줄이자 연간 약 1톤 이상의 CO₂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국내 기준 연간 차량 1대당 평균 2.3톤 배출 기준).
이 경험을 통해 자동차 없는 삶이 단순히 ‘절약’이 아닌, 지속 가능한 삶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걸 체감했고, 앞으로도 출퇴근은 대중교통, 주말엔 선택적 렌트로 유지할 계획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실천은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생활의 방식 자체를 바꾸는 선택에서 시작된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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